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아프리카 전역 (문단 편집) == 배경 == [[나치 독일]]이 전 유럽을 휩쓸고 [[프랑스 침공]]으로 프랑스마저 빈사상태로 보내버리려던 시점 [[이탈리아 왕국]]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이 유럽의 전쟁에서 독일에 붙는게 이득이 될거라고 판단하여 추축군에 가담하였다. 그리고 당당하게 프랑스에 살짝 발을 들이밀었는데 소수의 프랑스 국경경비대에게 [[이탈리아군의 졸전 기록|역관광]]당하는 바람에 잠시 체면이 구겨지기도 했으나 프랑스의 항복으로 서유럽 대륙에서의 전투는 마무리되었고 이탈리아도 별로 한 건 없지만 추축군 자격으로 은근슬쩍 인접한 프랑스 영토와 식민지 일부를 [[득템]]하는 성과를 얻기도 하였다. 어쨌든 유럽의 주요 지역은 독일이 정리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었다. 당시 독일은 영국 본토 침공을 목표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이탈리아는 그 틈새시장을 노리기로 결정하였다.[* 북아프리카는 역사적으로 [[카르타고]]와의 전쟁으로 획득한 [[로마]]의 영토였고 이 지역을 획득하기 위한 이탈리아의 노력은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이후 '''꾸준히''' 계속되었다. 물론 신난다고 또 쳐들어간건 뭐든 행패부리고 총칼 들이밀면 된다는 국제정세를 보고 자뻑에 빠진 [[무솔리니]]의 독단이었다. 오늘날까지도 이탈리아와 리비아의 관계는 좋건 싫건 장난아니게 밀접하다.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축출에 이탈리아는 반대했던 사실을 상기해 보자.] 이에 주목한 곳이 [[북아프리카]] 지역의 영국 식민지[* [[수단 공화국|수단]]은 이집트와 영국의 공동 통치하에 있었고, [[이집트 왕국]]은 1922년 독립했지만, 아직도 영국이 절대적인 종주국 노릇을 하고 있었다.]들과 [[발칸 반도]]였다. 일단 독일이 이쪽을 노릴 생각은 없어보였고 당시 관점에서 독일이 영국을 [[정복]]하는 것은 자명한 상황이나 다름없었기에 무솔리니는 이집트를 공격해도 영국은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것이라 판단하였다. 이에 무솔리니는 이집트 원정을 천명하고 이탈리아군에 준비를 지시하였다. 뭐, 이때까지는 이탈리아가 틀린건 아니었다. 영국 역시 손가락만 빨고 있었던건 '''맞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